제 5 호 에세이, 좋아하세요?
정기자 정지은 202210316@sangmyung.kr
▶ 여태현, <오늘은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목차 中
에세이에 관한 단순한 궁금증으로부터
나는 서점에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서점이 주는 고유한 향기와 책들이 나를 감싸는 듯한 포근한 분위기를 즐긴다. 베스트셀러 가판대 앞에 서서 책 제목을 구경하고, 마음이 끌리는 제목을 발견했을 때 한두 페이지씩 읽어보는 설렘이 좋다. 그렇게 내가 손길이 가는 제목을 가진 책들은 소설 아니면 인문학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에 에세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서점 베스트셀러 가판대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사실 난 한 번도 제대로 에세이를 완독해 본 적도, 내 돈을 주고 에세이를 구입해 본 적도 없다. 어떻게 보면 에세이를 선호하지 않는 듯하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에세이(Essay)는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한두 가지 주제를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 양식을 뜻한다. 이처럼 나에게 에세이는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만큼,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라고 느껴졌다. 꼭 유명 작가가 아니더라도, 전문적으로 글을 배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저 위로와 공감의 따스한 말들이 가득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러한 위로와 공감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인 이유에 대해 문득 궁금해졌다. 서점에 가서 보는 에세이들의 제목은 이러하다.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오늘부터 성장할 나에게’, ‘나의 봄날인 너에게’,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제목만 봐도, ‘너’와 ‘나’, ‘우리’를 위로해 주는 듯한 내용을 가득 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에세이는 딱 이 정도였다. 제목만 보고 느낀 이 정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 에세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에세이를 찾아 읽고, 에세이 속의 삶을 동경하고 닮아가고자 한다. 그렇다면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세이를 찾는 사람들
머릿속이 복잡해 생각 정리를 하고자 무작정 버스를 타고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 발걸음이 자꾸만 소설이 가득한 책장 앞에 멈춰 섰다. 적당히 구경하다가 에세이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에세이가 가득한 공간에 가니, 제자리에 서서 에세이 한 권을 골라 읽는 사람도 있었고, 미리 서가 위치를 프린트해 와 책을 찾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모른다. 순간 궁금증이 생겨,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에세이... 좋아하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에세이를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얼핏 당황한 듯 보였지만 모두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자기 생각들을 말해주었다. 책 위치가 그려진 종이를 들고 있던 한 여성분은 “항상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생각만 하고, 정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저를 대신하여 예쁜 문장으로 대신 정리를 해주는 느낌이라 생각도 정리되고, 마음이 편해져서 읽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이야기 해주었고, 한 피디의 책을 읽고 있던 분은 “친구가 자신이 써오던 일기를 에세이로 출판한 것을 계기로 처음 에세이를 구입해 읽어보며 에세이의 매력에 빠졌어요. 평소 관심 있던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찾아 읽게 돼요.”라며 자기 경험을 살려 이야기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에세이 신간을 들여다보던 분께 질문을 드렸다, 그는 “정신없이 일하면서 살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에는 나이가 많이 들기도 했고, 누군가와의 만남에 대한 접점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해결하고, 주위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읽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쑥스러운 듯 답해주었다.
사람들은 에세이를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가진 사람의 발자취가 궁금하여,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 읽기도 했고, 나와 같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찾기 위해 에세이를 읽고 있던 것이다.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다른 빛을 내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어 삶이라는 무대를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다. 에세이는 이러한 사람들의 무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고, 비슷한 상황에 공감하고, 때로는 위로해 주며 누군가에게 인생을 살아갈 힘을 준다. 주위 사람들에게 섣불리 하기 힘든 감정과 생각을 책을 통해 정돈하고 치유 받는다.
에세이와 소설의 차이점도 이러한 이유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두 장르는 몰입력에서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상하게도 나의 책장을 보면 더 흥미롭게 읽혀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소설이었지만, 밑줄과 인상 깊은 페이지를 종이로 접은 부분은 에세이가 더 많았다. 마음 한구석을 채워주며 마치 나에게 말하는 듯한 구절이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에 딱 드는 소설을 하나 발견하면 그 책에 몰두하여 새벽을 달려 결말을 봐야 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자야 할 시간이 되면 미련 없이 책을 덮고, 편하게 잠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은 어느 정도의 각색과 허구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사람을 매료하는 매력이 있긴 하나, 에세이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쓴다는 점에서 부담 없이 언제든지 찾아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에세이는 독서가 힘든 사람들에게 원하는 페이지를, 원하는 시간에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고 어렵지 않게 다가간다. 그렇기에 이를 찾는 사람들이 요즘 사회에 더욱이나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인터뷰를 한 분도 약속 가기 전에 잠깐 시간이 나서 서점에 와 에세이 읽고 있었다고 답한 걸 보면, 언제든 편하게 펼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에세이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에세이라고 안 읽을 이유 있겠습니까
앞서 말했듯, 나는 에세이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에세이를 찾는 것에 궁금증이 생겼고,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들어보았다. 이제는 내가 직접 에세이를 읽고, 느껴봐야 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또 한 번 서점에 방문하여 에세이 한 권을 들어 몇 장 들춰보았다. 나와 다르지만, 같은 고민을 해온 사람이 적은 이야기, 책 속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쓰여있었다. 단편적인 구절과 장면을 본 것이지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를 느끼고, 꽤 큰 힘을 얻었다. 평소에 위로와 공감은 나 혼자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해 왔다. 혼자서 극복하기에 버거움이 있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두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위로와 공감을 얻기보다는 인문학적 지식을 습득하거나, 소설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 나에게 더 솔깃하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했다. 에세이는 어쩌면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이자 간접 경험이 되어줄 수 있겠다. 에세이를 읽으면 "저 사람은 이런 삶을 살고 있구나",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살지?”와 같은 궁금증이 들며 나 혼자만의 사유와 사색을 시작하게 만든다.
누군가와 대면하며 나누는 대화는 생생하며 활기차고 재미있다. 다만, 매 순간 상대의 본 마음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해석하는 데에 있어 꽤나 머리를 쓰게 된다. 나는 보통 이야기를 하는 역할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포지션에 놓였던 것 같다. 대면으로 상대와 대화하는 것은 내 말에 대한 상대의 피드백이 직접적으로 돌아온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을 넘어서,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생각하는 나의 성격상 이에 대해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에세이를 읽고 느꼈다. 에세이를 읽는 그 시간, 그 공간만큼은 자유로운 나만의 것이 된다. 상대와 나 사이에서 머리를 쓸 필요도, 상대의 말을 해석할 필요도 없이 그저 글의 의도를 천천히, 나의 시선에서 여유롭게 사유하고 느끼면 된다. 에세이는 독자에게 주는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에 대해 여유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소설에도 여러 장르가 있는 것과 같이, 에세이에도 여행 에세이, 그림 에세이, 감정 에세이 등 분야가 다양하다는 점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독자가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골라 읽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사람들이 에세이를 찾고, 공감과 위로를 받는 마음이 이해됐다. 결국 에세이를 읽는 이들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세상에 대한 따스한 호기심에 책을 펼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에세이를 찾아 읽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에 시작한 글이었으나 글을 쓰며 에세이의 매력에 점차 빠지게 되었다. 어쩌면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은 나의 마음을 납득시키기 위한 글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의 마음을 울릴 에세이 한 권을 만나 여러분들 앞에 소개할 날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