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1 호 어색하지만 의미 있는 한 끼, 밥약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어색하지만 의미 있는 한 끼, 밥약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새 학기 들어,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문화가 있다. 바로 ‘밥약’이다. 특히 신입생을 중심으로 선배에게 밥 약속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어나며, 캠퍼스 곳곳에서 선후배 간 만남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SNS와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밥약 꿀팁’, ‘대화 주제 추천’ 등의 게시물이 다수 공유되며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 잡은 모습이다.
‘밥약’은 ‘밥 약속’의 줄임말로, 후배가 선배에게 식사를 함께하자고 제안하고, 선배가 식사를 사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보통 신입생이 먼저 요청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과정을 ‘밥약을 건다’고 표현한다. 대학 생활 적응과 선후배 관계 형성의 출발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학생이 뽑은 ‘밥약 최악의 꼴불견’(사진:https://www.mt.co.kr/future/2016/04/12/2016041208210052521)
“선배 밥 사주세요!”, 설렘 뒤에 숨겨진 부담
밥약은 선후배 간의 거리감을 줄이고 학교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로 작용한다. 신입생 입장에서는 수강신청, 동아리, 시험 정보 등 실질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고, 선배 역시 후배와의 교류를 통해 학과 내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일부 학생들은 “밥약을 통해 학교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줄었다”,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선배가 생겨 도움이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모든 밥약이 긍정적인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배들 사이에서는 금전적 부담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한 번의 식사로 끝나지 않고 여러 번의 밥약이 이어질 경우 지출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전 협의 없이 일정이 변경되거나 갑작스럽게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 개인 일정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의견도 있다.
심적인 부담 역시 존재한다. 서로 친분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은 어색함을 동반할 수밖에 없으며, 일부 선배들은 “후배가 단순히 밥을 얻어먹기 위해 만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좋은 선배로 보이고 싶어 오히려 더 긴장된다”고 토로했다. 반대로 최근에는 후배가 보답으로 음료를 사거나, 비용을 나누자는 제안을 하는 경우도 나타나며 기존의 일방적인 구조가 변화하는 모습도 보인다.
밥약은 분명 관계 형성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금전적·시간적·정서적 부담이 함께 뒤따르는 양면적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밥약을 진행한다고 해서 반드시 친밀한 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 효과에 대한 인식 역시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 SNS 내 밥약 관련 게시물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SNS 밥약 꿀팁부터 ‘뻔선뻔후·짝선짝후’까지, 대학 선후배 교류 프로그램 어떻게 돌아가나
최근 대학가에선 에브리타임, 카톡 및 SNS 등에선 밥약과 관련한 매너, 신청 꿀팁, 대화 주제 등을 공유하는 글들이 화제로 자주 올라온다. 보통 개강총회, MT(학술답사제) 이후나 중간·기말 이후 밥약을 잡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안내하며, 너무 비싸지 않은 선에서 선배에게 메뉴를 요청하며 친해지기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던지며 조언한다.
뻔선뻔후는 대학 커뮤니티 내부에서 사용되는 용어로서 입학 연도는 다르지만, 학번 뒷자리가 같은 선후배를 뜻한다. 일부 대학에서는 선후배 교류를 장려하기 위해 학생회 주도의 행사나 캠페인을 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차 의과학대학교에서는 미래융합대학 학생회 주도로 “뻔선뻔후”를 개최하여 새 학기를 맞아 선배와 후배가 서로 선물을 주고받거나, 문화생활 하기, 전공서적 및 시험 족보를 알려주는 등의 비공식적인 도움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본 이벤트에 참여한 학생은 “이벤트를 통해 후배와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 매년 진행되어 선후배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좋겠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짝선짝후는 뻔선뻔후와 비슷한 개념이나, 무작위로 선후배를 매칭하는 행사 및 캠페인이다. 매칭된 선배와 후배는 뻔선뻔후의 활동과 비슷하게, 대면·비대면 상담, 학교 적응·기숙사·수강 정보 공유 등을 돕는다.
위 프로그램에 참가한 후배 학생들은 “선배와의 거리감이 줄고, 학교에 다니며 궁금한 것이 많이 해소되었다” 라고 소감을 남겼다. 선배 학생들은 “자신이 후배였을 때 궁금했던 사항들을 알려줄 수 있어 뿌듯하다.” 라고 소감을 전했다. 행사 운영진은 본 프로그램이 학교생활이 막막한 후배들에게 교내 선배들이 돕는 멘토링 구조가 형성되어 학교 내 풍조 및 단합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평가했다.
▲짝선짝후 프로그램 홍보 게시물(사진: 러시아·중앙아시아지역학전공 인스타그램 캡처)
밥약도, 선후배 교류도, 강요 없이 자율이 답이다
▲밥약할 때 지켜야 하는 매너(사진: 대학내일)
선후배 교류 프로그램은 ‘의무’가 아닌 선후배가 자율적으로 선택한 연결이다. 후배가 먼저 다가가고, 선배가 부담감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거절하거나 시간 및 방식을 조절하는 등의 강요 없는 자율적 교류가 핵심이다.
결국 이와 같은 문화는 선후배의 유대 및 단결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치지만 이 전제는 강요 없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경험에 있다. 앞으로는 밥약 뿐만 아니라 뻔선뻔후나 짝번짝후와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참여 여부와 범위를 개개인에게 맡기는 자율적 구조로 설계할 때,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선후배 관계 문화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은탁 기자, 김건우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