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20호외-5 호 영화 ‘뮬란’으로 돌아보는 홍콩 민주화 운동
실사화 ‘뮬란’, 개봉과 동시에 싸늘한 반응
알라딘, 라이언 킹 등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실사화로 매번 화제의 중심에 서던 디즈니가 이번 영화 <뮬란>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주체적이고 강인한 뮬란은 훈족과의 대립으로 징집 대상이 된 아버지를 대신하여 여자임을 숨기고 대신 전장에 나선다. 뮬란은 용기와 지혜가 넘치는 모습으로 훈족으로부터 위협받는 왕을 구하며 나라의 영웅이 된다는 것이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이다.
1998년 중국의 화목란 설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뮬란>은 여성은 순종적이며 비주체적이라는 전통여성상을 뒤엎으며 화제가 되었다. 주체적이며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여전사를 주연으로 등장시키며 신선한 충격과 함께 많은 인기를 끌었기에, 이번 실사화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소식은 수많은 기대를 받았다. 소위 말하는 대박을 친 애니메이션을 원작 그대로만 만들어도 성공은 보장된 길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2020년 개봉한 실사판 <뮬란>은 과한 각색과 출연진, 제작진들의 태도 등의 이유로 여기저기서 끊임없는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뮬란 보이콧 운동의 시발점은 주인공 유역비의 한 발언이다. 그는 SNS에서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나를 공격해도 좋다. 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며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경찰의 무력 진압을 긍정하는 뜻을 표했다. 홍콩 민주주의 활동가로 알려진 조슈아 윙은 영화 뮬란이 공개된 후 SNS에 “디즈니가 베이징에 굽신거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또한 유역비가 공개적으로 자랑스럽게 홍콩에서 이뤄진 경찰의 만행을 지지했기 때문에 나는 인권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뮬란’의 보이콧을 촉구한다.”라며 뮬란의 보이콧운동에 뜻을 밝혔다. 세상의 편견과 제약에 굴하지 않고 탄압과 차별에 맞서면서 정의를 구현하는 뮬란이라는 캐릭터를 경찰의 무력 탄압을 옹호한 유역비가 연기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반감을 샀다. #BoycottMulan(보이콧뮬란), #BanMulan(뮬란을금지하라)등 해시태그 운동이 전개되었고 이 운동은 주변국으로도 확산되었다. 홍콩과 대만, 태국 이 세 나라는 모두 밀크티를 좋아하고 밀크티가 유명한 국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밀크티 동맹’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이 청년들을 주축으로 관람 거부 운동이 확산되었다. 거기에 영화 뮬란 출연 배우 견자단이 7월에 SNS에 게시한 “홍콩 중국 반환 23주년 축하한다.”라는 발언과 전 디즈니 경영진이자 영화 제작자인 제이슨 리드의 "중국에 사는 배우에게는 매우 복잡한 상황일 것"이라며 "유역비를 지지한다."라는 발언은 보이콧운동에 더 큰불을 지폈다.
국내 청년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은 ‘#BoycottMulan’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뮬란 보이콧운동에 대해 소개하고, 참여 방법을 안내했다. 이들은 뮬란의 상영과 배급 중단을 요구하며 “우리는 폭력을 소비할 수 없다”라는 강력한 뜻을 선포하며 월트디즈니 코리아 본사 앞에서 시위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무력 탄압을 한 홍콩 경찰에 대한 지지와 홍콩 중국 반환 축하 등과 같은 태도는 관람 거부 운동으로까지 이어지며 싸늘한 반응을 받는 상황이다. 영화 뮬란은 개봉 전에도, 개봉 후 현재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각국의 인권운동가들은 뮬란 보이콧을 통해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 뮬란의 보이콧 운동을 계기로 홍콩과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홍콩 민주화 운동, 왜 일어났을까?
홍콩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홍콩은 어떠한 곳이며 왜 2019년인 현대에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을까?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로 과거에는 광둥성 신안현에 속해있었으나, 1841년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984년 중국과 영국의 연합성명에 따라 1997년 7월 1일에 주권을 회복하고 특별행정구로 지정되었다. 홍콩은 주권 회복 이후 중국의 영토에 속하지만 일국양제가 시행되고 있어 올림픽 등 국제 경기에 별도의 국가 대표 팀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일부 국제기구에 중국과는 별도의 회원 자격을 갖는 등 많은 부분에서 중국 본토와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어난 홍콩 민주화 시위의 발단은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였다.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은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이다. 이 법은 2018년 2월 대만에서 벌어진 20대 홍콩 남성이 대만에 같이 가던 홍콩인 여자 친구를 살해했지만 홍콩의 영국식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타국에서 발생한 살인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던 홍콩인 살인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2019년 홍콩 정부에서 대만과 중국, 마카오 등에서도 용의자 소환이 가능하도록 인도법 개정안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나 홍콩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체제에 반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중국 본토로 송환하기 위해 인도법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면서 2019년 3월 31일 범죄인 인도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되었고, 점차 반중국 정서를 강하게 띠면서 민주화 시위로 이어지게 되었다.
무력탄압에 맞선 홍콩 시민들
시위는 2019년 6월 12일에 예정되어있던 법안의 2차 심의를 앞두고 더 거세졌다. 6월 9일 시위에서 시민들은 법안 처리가 예정되어 있던 입법회 건물 주변을 봉쇄하였고 이에 홍콩 정부는 폭동으로 간주하고 최루탄, 물대포 등을 사용하며 진압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결국 계속되는 시위에 홍콩 정부는 범죄인 인도법안의 2차 심의를 미루었지만 시민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법안 연기가 아닌 완전 철회를 주장했고, 법안 진행 주도자인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어 7월 21일에는 위안랑 지하철역에서 흰옷을 입은 남성들이 범죄인 인도법안 반대 시위자들과 시민들에게 무차별한 공격을 한 백색테러 사건이 일어나며 시위를 다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7월 28일에는 대형 성조기가 등장하는 등 시위는 점차 강한 반중국 정서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에 7월 29일 홍콩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중국 국무원 홍콩, 마카오 사무판공실에서는 홍콩 정부와 경찰에게 시위대의 폭력 행위에 강력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국 정부에서는 8월 6일 홍콩 경찰에게 엄격한 법 집행을 주문하고 다음날에는 홍콩 시위를 색깔 혁명이라 규정했다. 홍콩시위대는 이 시위를 알리고자 8월 9일부터 11일까지 홍콩 국제공항에서 연좌시위를 진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시위 참여자 중 한 여성이 경찰이 쏜 고무탄에 오른쪽 눈을 맞아 실명위기에 처하자 분노한 시민들이 공항 입국장을 점거하여 대규모 결항 사태가 일어났다.
9월 4일 범죄인 인도법안을 공식 철회한다는 입장이 발표되었지만 시위대가 요구했던 ‘폭도’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원의 무조건 석방 및 불기소,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행정장관 직선제 시행 등의 다른 사항들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시위는 장기화되었다. 10월 1일과 10월 4일, 경찰이 쏜 실탄에 18세 고등학생과 14세 소년이 맞았지만 경찰은 그 어떤 해명도 없이 이 두 학생을 폭동 혐의로 체포해가는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10월 4일 홍콩 특별행정회의에서 긴급법 발동을 통해 복면금지법을 통과하여 기존의 홍콩의 역사상 시위들과 달리 경찰이 요구하면 복면을 벗고 얼굴을 보여주어야 했으며 그에 따른 리스크도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홍콩 보이콧 선포식 (출처: 세계시민선언 홈페이지)
영화에서 더 나아가 홍콩 민주화 시위에 관심을
이러한 논란에도 <뮬란>을 영화라는 문화콘텐츠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뮬란>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고 해서 영화 자체가 홍콩이나 인권 탄압 문제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뮬란> 보이콧 운동이 단순히 영화를 음해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절대 <뮬란>을 옹호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 또한 팽팽하다. 인권탄압이 이뤄진 곳에서 촬영한 후 감사인사를 표하고, 민주화 시위의 무력진압을 옹호하는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를 지지하는 태도는 중국 정부의 횡포를 용인하는 것과 같다는 주장이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는 현재 코로나 때문에 잠시 주춤했지만 무장한 경찰들의 무차별적인 공격과 시위대의 대치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장정아 교수는 이런 홍콩 시위에 대해 “굉장히 고통스럽게 새로운 홍콩을 만드는 과정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10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들이 국가와 경찰들 앞에서 목숨을 걸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 체제와 국가의 부당한 대우에 반발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일상 속에서 정부에 의존하기만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자유와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도 민주화 운동을 통해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던 역사가 있기에 홍콩의 상황이 이질적이지 않다. 홍콩의 상황에 무관심했다면 이번 <뮬란> 논란을 전환점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관심 가지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은 어떨까?
윤소영 기자, 정유빈·이은영 수습기자